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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 삼공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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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5-21 12:02 조회28,7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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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院) : 선()을 교육하고 실수()하는 불교의 전문교육기관.

우리 나라의 선원은 통일신라 말에 선종()이 전래된 이후 설치되어, 승려 양성에 중요한 수행기관으로서 큰 구실을 하여 왔다. 

사찰 내에서는 선당()·선방()·좌선당()이라고도 한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 당시의 비구()들이 우기() 이외에는 한 곳에 살지 않고 탁발()을 계속하다가, 우기가 되면 작은 벌레나 초목들을 밟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외출을 금하고 한 곳에 머물며 안거()한 것에서 연유한다.

선원의 교육목표는 불교의 진리를 좌선을 통해서 내관()하고 스스로 살펴 자기의 심성()을 철견()함으로써 자증삼매()의 묘한 경지를 체달하여 견성성불()하며 중생제도를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일정한 교육기간이 정해져 있는 강원()과는 달리 선원은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의의가 더 컸다. 

선원의 조직은 강원의 조직과 거의 같다. 선원은 방장() 또는 조실()의 지휘 아래 운영되었는데, 그 아래 책임자로서 선주()를 둔다. 이 선주는 선덕() 또는 수좌()라고도 하며, 방장이 겸하는 경우도 있다. 

선주 밑에는 내호법반()으로 입승()·유나()·시 불()·병법()·헌식()·사찰()·시경()·시자()·간병()·지객()·정통()·정두()·삭두()·마호()·종두()·봉다()를 두고, 외호법반()으로는 원주()·별좌()·미감()·서기()·원두()·채공()·공사()·부목() 등을 두었다.

특수조직으로는 조실·열중()·선백()·지전(殿)·지객·원두·간병·반두()·정인()·서기·전다()·채두()·자두()·별좌·도감()·원주·화주() 등을 둔다.

선원에서의 하루 수행시간은 8시간 이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조선승려수선제요 >에 의하면 해인사 퇴설당() 선원은 하안거 때 8시간, 동안거 때 11시간, 월정사 및 범어사의 선원은 하안거·동안거 모두 10시간씩, 대원사()는 8시간, 파계사()는 6시간으로 되어 있다. 

수행방법은 ‘자선자수()·자력자식()’을 기본으로 하며, 안거는 좌선을 위주로 하되 선리()를 연구하고 대소승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한, 선원수행의 습독서()로는 ≪금강경≫·≪능엄경 ≫·≪선요 ≫·≪절요 ≫·≪도서 ≫·≪서장 ≫·≪치문 ≫·≪자경문 ≫·≪초심 ≫·≪염송 ≫ 등이 채택되었고, 권장 경전으로는 ≪화엄경≫·≪원각경 ≫·≪법화경≫·≪기신론 ≫ 등을 배우기도 하였다.


삼화사

삼화사(三和寺)는 통일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창건 당시에는 삼공암(三公庵)이라고 했다. 고려 태조가 삼화사로 고쳤고 공민왕 때 중건하였다. 조선 태조 때 수륙도량(水陸道場)으로 지정되었고, 태종 때 총남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된 지방 명찰(名刹)이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지만 18세기 영조 때 중건하였고, 이후에 여러 차례의 중건·중수가 이루어졌다. 20세기 초에는 의병 운동의 거점이 되어 사찰이 불타기도 했다. 1977년 무릉계곡 입구에 있던 절이 기업의 채광권에 포함됨에 따라 지금의 삼화사 자리로 이전하였다. 2013년 12월 삼화사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삼화사 창건에는 세 가지 설화가 전해온다. 

먼저 『삼화사사적(三和寺史蹟)』에 의하면 신라시대인 642년(신라 선덕여왕 11) 자장(慈藏)이 

당(唐)에서 귀국하여 두타산에 와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하고, 

『강원도지』에서는 신라하대인 829년(신라 흥덕왕 4)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864년(신라 경문왕 4) 사굴산문(闍崛山門)의 범일(梵日) 국사(國師)가 절을 짓고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말에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이곳에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와 무언가를 논의하고 떠나자 사람들이 그곳을 삼공(三公)이라 하였고, 

얼마 후 범일이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삼화사가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은 그 신빙성이 떨어지고, 통일신라말에 선종 사찰로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신인이 절터를 알려 준 것이 신기한 일이고, 

삼국통일이 부처님 영험의 덕택이었으므로 이를 기리기 위해 

삼국이 화합하여 통일이 되었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삼화사(三和寺)로 고쳤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시인인 동안 거사 이승휴(李承休)가 외가 고장인 삼척에 머물며 삼화사에 왕래하였는데,

두타산 자락에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지었다. 

고려말인 1367년(고려 공민왕 16)에 절이 풍우로 퇴락한 것을 나옹 스님이 중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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