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사 | 두타산 삼화사 공양실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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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31 15:02 조회2,489회 댓글0건본문
관세음보살 [ 觀世音菩薩 ]
< 사진 위 왼쪽 >
산스크리트로 아발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이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은 구역이며 관자재는 신역인데, 산스크리트 '아바로키테슈바라', 곧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였다.
그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 또는 관음경(觀音經)이라 일컫는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이다.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救世淨者],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보살[大悲聖者]이라고도 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보타락산(補陀落山)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보타락산은 팔각형의 산으로, 산에서 자라는 꽃과 흐르는 물은 빛과 향기를 낸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단독 형상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 대세지보살과 함께 있기도 한다.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천수관음보살(千手觀音菩薩) 등의 형태로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왕신(竈王神)
< 사진 위 오른쪽 >
부엌을 맡고있다는 신이다.
조신·조왕각시·조왕대신·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사찰에서는 조왕각을 따로 지어 탱화를 안치하여 모시거나 부엌에 탱화를 걸어 놓기도 한다.
이와 달리 민간신앙의 조왕신은 부뚜막에 올려놓는 조왕중발(자그마한 그릇)로서 나타난다.
민간신앙에서의 조왕신은 전래의 가신(家神)신앙에서 비롯된 여러 가신들 중의 하나이다.
가신은 가족의 번창을 돕고 액운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들이다.
가신 중에서 특히 신앙되는 대상은 성주·삼신·조왕신이 있다.
본질적으로 화신(火神)인 조왕신은 성격상 부엌의 존재가 되었고, 가신(家神)신앙에서도 처음부터 부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부녀자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나쁜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 또한 금기 사항이었으며, 항상 깨끗하게 하고 부뚜막 벽에는 제비집 모양의 대(臺)를 흙으로 붙여 만들고
그 위에 조왕중발을 올려놓는다.
주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샘에 가서 깨끗한 물을 길어다 조왕물을 중발에 떠 올리고, 가운(家運)이 일어나도록 기원하며 절을 한다.
가릉빈가[ 迦陵頻伽 ]
< 사진 가운데 왼쪽 >
가릉빈가는 범어인 갈라빈카(Kalavinka)를 한자로 번역한 것으로 줄여서 ‘빈가조(頻伽鳥)’라 부르기도 한다. 이 새는 불경에 나타나는 상상의 새로 극락에 깃들여 산다고 하는데, 그 형상은 인두조신상(人頭鳥身像)을 나타낸다. 이 신조(神鳥)는 “자태가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소리 또한 아름답고 묘하다”하여 묘음조(妙音鳥)·호음조(好音鳥)·미음조(美音鳥)라고도 하며, “극락에 깃들어 산다”고 하여 극락조(極樂鳥)라고도 부른다.
그 형상을 살펴보면, 머리와 팔 등 상체는 사람의 형상을 하였고, 머리에는 새의 머리깃털이 달린 화관(花冠)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그 반인반조상(半人半鳥像)은 전설에 의하면 인도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산다고 하는 불불조(bulbul鳥)라고 하는 공작새의 일종이라 한다. 그 모습은 고대 인도의 가공적인 형태에서 그 모양을 찾아볼 수 있고 산치(Sanchi)의 탑문에 1쌍의 반인조가 나무에 앉아서 공양을 드리고 있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릉빈가는 특히, 통일신라시대를 즈음하여 불교미술 양식에 많이 쓰여졌던 소재이다. 가릉빈가가 새겨진 와당(瓦當)은 황룡사지를 비롯하여 분황사지, 삼랑사지, 임해전지 등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성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천은사지, 보문사지, 남윤사지 등에서 발견된 가릉빈가 와당은 정면을 향한 모습이며, 그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측면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형식은 수대(隨代)의 숭산 소림사 각화(刻畵)에 나타나는 가릉빈가와 유사하다. 머리에는 새의 깃을 꽂은 보관(寶冠)을 쓰고, 한 쪽 날개는 위로 치켜올렸으며, 다른 한 쪽은 아래로 내린 자태로서 인두조신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그러한 인두조신상이 나타나며, 당나라 때의 기와 마구리인 와당에 나타나면서 통일신라시대의 가릉빈가 와당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고려시대 부도탑의 기단부에 새겨진 가릉빈가의 형상이 나타난다. 여기의 가릉빈가는 생황을 불고 있거나 피리, 비파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이 대부분이며, 간혹 공양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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