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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 두타산 삼화사 삼성각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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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25 18:35 조회1,9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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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 (사진 위) [ 熾盛光如來 ]

 

불교에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그 중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밖에 북두칠성은 칠여래(七如來), 

해는 일광변조소재보살(日光遍照消災菩薩), 

달은 월광변조소재보살(月光遍照消災菩薩)로 바꾸어 부른다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치성광을 내뿜어 해와 달, 그리고 별과

그 별이 머무는 자리 등 빛이 있는 모든 곳을 다스린다. 

불교가 우리나라 재래의 민간신앙을 흡수한 예로,

다른 나라 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찰에서는 다른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꾸민 예는 없고, 칠성각 또는 삼성각에 후불탱화로 모신다.

일광여래·월광여래와 함께 삼존불을 이루고 주변에는 칠여래와 칠원성군이 배치된다.

아이의 수명을 관장하고 재물과 재능을 준다고 하여 예로부터 민간에서 많이 믿었다.

특히 약사불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하여 자식이 없거나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자, 자녀의 수명을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믿었다.

 

산신도(사진 중앙)  

사찰 안에는 부처를 모신 법당 이외에도 여러 건물이 있다. 
그중 산신각은 산신령을 모셔놓은 곳이다. 
이 산신각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우리 고유의 토속신이 불교에 수용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므로 예로부터 산에 대한 신앙이 깊었다. 
나라를 열기 위하여 환웅이 처음 내려온 곳도 태백산이라는 산이었으며, 
단군은 은퇴 후 산에 들어가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야의 김수로왕이 구지봉에서 강천하였다고 전해지는 등
역사적으로 보면 왕조의 시작이 산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까닭으로 산신은 예로부터 많이 믿어졌으며, 
산신에 대한 경의는 어느 시대나 계속되었다.

신라는 삼산오악에 각기 대사()와 중사()를 올렸는데, 
삼산()은 나력산·골화산·혈례산을 이르고, 오악은 토함산·지리산·계룡산·태백산·부악산을 이른다. 
또 상악산·설악산·화악산·감악산 등 24산에는 소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와 조선에까지 이어진다. 
고려시대에는 재변이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오악명산에 빌었으며,
국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도 산에 제사를 지내곤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오악과 오진에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오악은 금강산(동)·지리산(남)·삼각산(중)·묘향산(서)·오대산(북)을 이르며, 
오진은 오대산(동)·속리산(남)·백악산(중)·구월산(서)·장백산(북)을 말한다.

민간에서도 전국 어느 산에나 산신을 모신 산신당을 두고 소원을 빌거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산신제가 동제로 발전되었으며, 
토속신들을 포용하는 불교에 자연스럽게 접목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사찰 내에 산신각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산신은 대개 백발 노인으로 등장하고 영물로 알려진 호랑이와 함께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다. 
예로부터 우리의 산에는 호랑이가 많았으므로 자연스럽게 함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호랑이 자체가 산신령으로 여겨지기도 하여
 『후한서』동이전에는 우리의 옛 조상들이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으로 섬겼다”는 기록이 있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산신은 우리의 고유한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산신은 도교와 유교에서 좀 다르게 나타난다. 
도교의 산신은 하얀 수염에 머리는 벗겨졌으며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이다. 
손에는 하얀 부채나 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배경에는 3개의 산이 그려져 있다. 
배경의 산들은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영주산·방장산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유교에서는 머리에 복건이나 유건 또는 정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산신이 등장한다. 
책이나 대나무 등의 장식물이 앞에 놓이며 차를 달이는 도구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고유의 산신들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그 모습이 변화된다. 
삭발한 스님이 『법화경』을 들고, 적록색에 금박이나 노란색 문양이 있는 옷을 입은 모습이다. 
물론 옷은 스님들의 가사를 변형시킨 것이다. 
산신과 함께 등장하는 동자는 산신에게 과일이나 차 등을 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산신은 삼성각에도 모셔지는데 
삼성각은 산신과 칠성, 독성을 한자리에 모셔놓은 곳이다. 
칠성신은 중국 도교의 신으로 원래 민간에서 숭배하던 별신이다. 
별을 통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칠성은 특히 어린아이의 명을 길게 해준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칠성신앙이 널리 퍼진 것은 조선 인조 때의 일로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청나라의 태종이 인조에게 도교를 숭배하도록 압력을 가한 후부터 민간에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독성 (사진 아래)[獨聖]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 깨우쳐 성인이 된 사람을 의미한다. 

독성이란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 깨우쳐 성인이 된 사람을 의미한다. 

독성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부처의 제자가 된 나한으로 말법시대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교화했다고 하는데 

부처의 제자 중에는 그의 이름이 없고, 이름을 거론한 경전도 없다. 

그래서 중국 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을 성취한 

나반존자()를 독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빈두로존자 혹은 가섭이라 하기도 한다. 

흰머리와 희고 긴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한국 사찰의 독성이란 단군신앙의 불교적 전개라고도 한다.

삼명()의 능력을 지녔으며, 자신뿐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능력도 지녔다고 한다. 

사찰에서는 독성각()에 모셔지거나 산신·칠성과 함께 삼성각에 모셔진다.

독성은 홀로 수도한다는 도교적인 의미를 지닌 때문인지 

대부분 깊은 산중의 지극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을 음미하듯 편안한 자세를 취한 도인()형으로 그려진다.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우고 오른손에는 석장(),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한 모습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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