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48 /불국품 46 /8, 보적의 게송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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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4-03-09 16:56 조회9,566회 댓글0건본문
유마경 강설 48 /불국품 46 /8, 보적의 게송 23
不着世間如蓮華하고
常善入於空寂行하며
세간에 집착하지 않음이 마치 연꽃과 같고
항상 공적한 행에 잘 들어갔으며
강설 ; 부처님을 표현하고 불교를 표현하고
불교적 삶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비유가 있다.
그것은 연꽃이다.
연꽃을 불교의 꽃,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한다.
연꽃을 왜 불교의 꽃이라고 하는가?
연꽃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반적인 뜻은 순결, 군자, 신성, 청정이지만
불교에는 사연도 많고 의미도 깊다.
부처님께서 룸비니동산에서
처음 태어나시던 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신 후,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오당안지
(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吾當安之)”라고
외치실 때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고 한다.
또 부처님이 어느 날 영산회상에서
수많은 청중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을 때
부처님은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들에게 보이셨다.
이때 다른 사람은 모두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였지만,
오직 가섭존자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로써 답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염화미소 이심전심 교외별전 열반묘심
(拈花微笑 以心傳心 敎外別傳 涅槃妙心)의 도리다.
그리고 사찰이든 부처님이 앉아계시는
좌대와 탁자, 불
탑과 석등,
주춧돌과 추녀의 석가래,
범종과 단청이며
부처님오신 날을 봉축하는
연등 행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연꽃이다.
인도에서 연꽃의 개념은
만물을 탄생시키는 창조력과 생명력을 지니며,
연꽃이 맑고 깨끗하며
여느 꽃과 달리 진흙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꽃잎이 크고 많으며 아름답기 때문에
가장 보배로운 꽃으로 간주되고,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인과(因果)의 이치와
부처님의 고결한 삶은 반드시 시시비비가 뒤끓는
오탁악세에서 꽃피운다는 의미와 잘 맞아
불상의 받침대는 반드시 연꽃으로 표현한다.
연꽃의 특징과 불교적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피지 않는다.
더럽고 오염된 물에서만 피어나지만,
그 더러운 환경에 조금도 물들지 않고
슬기롭고 소담하게 환경을
극복하고 아름답게 피는 꽃이다.
이는 곧 부처님이 궁극적 진리를 설하신 내용,
즉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의 번뇌 망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대로가 고귀한 부처님이라는 사실과 같다.
흙투성이의 못생긴 연근이
천하에 둘도 없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는 사실로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둘째, 연꽃은 화과동시(花果同時)이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을 “연밥蓮實”이라 하는데,
꽃은 열매를 맺는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인 것이다.
이 꽃과 열매의 관계를
원인[因]과 결과[果]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인과(因果)의 진리는
곧 불교교리의 근본이자,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이다.
또한 불교 궁극적 가르침에 연관시켜 보면
중생은 원인이고 부처는 결과라고 할 때,
실은 부처인 결과는 원인인
중생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어서
그것을 나눌 수 없는 관계다.
즉 부처가 중생이고
중생이 곧 부처인 것이다.
화엄경의 말씀과 같이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는 같은 것이다.”라는
이치를 연꽃이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셋째, 연꽃의 몽우리는 합장한 모습과 똑 같다.
우리들 얼굴이 피워내는 웃음의 꽃이나,
두 손을 고이 모아 가슴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연꽃이다.
합장이 피워내는 가슴의 연꽃은
부처님과 중생이 하나가 되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며,
이상과 현실이 하나가 될 때 피어나는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다.
얼굴에서 꽃을 피워내고,
가슴에서 희망의 꽃을 피워낼 때
우리도 관세음보살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연꽃 같은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설 때
우리도 곧 부처임을 증명해 보인다.
이와 같이 우리도 본래로 부처임을 알아서
연꽃처럼 우아하고
청정한 삶으로 거듭나게 되니
이것이 부처님을 상징하고
불교를 상징하고
불교적 삶을 상징하는 꽃이 된 이유이다.
연꽃 한 송이로
불교의 궁극적 진리를 다 표현할 수 있으니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이 경전의 본문에서는 부처님이
“세간에 있으나 세간에 집착하지 않음이
마치 연꽃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세간에 집착하지 않으려면
항상 마음을 텅 비운 공적한 행에
잘 들어가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불착세간여연화(不着世間如蓮華)도
유마경의 명구이다.
참고로 2010년 7월7일 신문과
각 TV 뉴스에 의하면,
“700년 만에 핀 연꽃”이라는 제하에
이날 오전 경남 함안군 함안박물관 수족관에 심어진
아라가야시대의 홍연이 7개의 꽃대와 함께
활짝 꽃을 피워 눈길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금년 7월 7일 현재 7개의 꽃대가 올라왔는데
그중 두 송이가 분홍색 꽃잎을 활짝 열었다는 소식이다.
당초에 백연이기를 기대하고 옛 지명의 이름을 따
“아라백연”이라 명명 했지만
700년이란 긴 시공을 뛰어넘어 피어난
이 홍연은 요새 홍련과는
좀 다른 꽃잎수가 적고,
길이가 다소 긴
아름답고 선명한 분홍색의 꽃을 피웠기에
“아라홍연”이라 고쳐 명명하는 한편
증식을 통해 “아라홍연”을 주제로 한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등
함안군의 명물로
가꿔 나갈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연꽃의 신비함을 또 한 번 느끼게 하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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