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처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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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3-02-02 11:58 조회9,070회 댓글0건본문
번뇌가 참다운 진리의 세계다
아미타 부처님의 후신이라고 칭송을 받는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는
불자로서 보살계를 받는 수행에 대한 근본 뜻과 그 공덕과
보살계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보살계라는 것은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과 같은 분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아는데 번뇌의 속박에 얽힌 범부가
어떻게 그것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또한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보살계는 부처님의 계[佛戒]라고도 하고
마음의 계[心戒]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계인 까닭에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살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보살, 즉 과거 천불의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그와 같은 높은 수준의 가르침을 온갖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내지 팔만사천 번뇌로 뒤엉켜 있는 범부중생들이 어떻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며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 문제를 풀어주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질문이다.
방편불교에 집착해 있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있기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이다.
“만약 자신을 범부라고 집착하여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일불승(一佛乘)의 종자를 말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옛 성인이 결코 ‘많고 많은 번뇌와 업과 미혹들이
모두 다 보현보살의 참다운 진리의 세계다
[普照塵勞業惑門 盡是普賢真法界].’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중생을 집착하여 부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시방의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화엄경에서 ‘부처와 마음과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앞의 질문에 대한 매우 명쾌하고 시원한 답이다.
보살계의 중요한 의미가 여기에서 다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범부는 범부가 아니라 성인이요, 중생은 중생이 아니라 부처인 까닭에
만약 범부를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불승의 종자,
즉 자신의 부처인 무량공덕생명을 말살하는 일이다.
성인이 말씀하지 않았는가?
“우리들 인간이 눈만 뜨면 토해내고 심지어 꿈속에까지 꽉 차 있는
번뇌 망상과 온갖 업장과 미혹의 무더기들이
그대로가 보현보살의 참다운 진리의 세계다.”라고.
만약 질문대로라면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였겠는가.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중생을 집착하여 부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시방의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정적인 말씀이다.
영명연수 선사의 취지도 결국은 ‘당신은 부처님’이다.
모든 성인들이 이와 같이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리석은 탓으로 바르지 못한 견해에 물이 들어 다이아몬드를 흙덩어리로 알고
함부로 취급하여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며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운동을 요원의 불길처럼 일으켜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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