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처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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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2-11-14 10:43 조회8,920회 댓글0건본문
하루 삶의 가치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든 사람의 하루의 삶의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우리들은 무감각하게 아무런 고마움도 모르고
이렇게 마음 놓고 잘 살고 있지만,
오늘 이 순간을 살기위해서 그토록 간절한 기도를 드렸지만
끝내 오늘을 살지 못하고
어제, 그리고 그저께, 그끄저께에 돌아가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살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이고,
또한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가며 가족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무진 애를 썼으나 모두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떤 대가라도 치를 테니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그와 같은 광경을 생각한다면 오늘 이 순간의 삶의 가치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극히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어떤 사형수가 쓴 글이 있다.
사형집행 날짜를 며칠 앞둔 그는 문득 감방 안에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를 보고
부러워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이 몸이 애석하구나.
차라리 저 벌레가 되더라도 목숨을 부지하며 살고 싶구나.”라고 하였다.
그는 또 이런 글도 남겼다.
“애정에 굶주린 사형수여라. 과자를 땅에 놓고 개미를 기다리네.”
“세상의 보탬이 되고 죽고 싶은 사형수의 이 눈을 얻으려는 사람도 없는가?”
라고 하였다.
사형수의 눈이니 어떤 맹인인들 가져가려 하겠는가?
벌레가 되어서라도 살고 싶다는 말이 너무나 절절하다.
또 교통사고를 당하여 처참한 모습으로 변한 아들을 보고
“팔과 다리를 다 자르더라도 내 아들의 목숨만은 살려내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하고 또 애원하는 광경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을 무슨 방법으로 살릴 수 있으랴?
수백억을 들인다고 살릴 수 있겠는가?
사람의 하루의 삶의 가치는 수백억보다도 더 값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을 죽이고 남을 죽이는가?
모두가 삿된 견해의 소산 때문이다.
사람의 지고한 가치, 즉 부처님이며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전도된 견해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운동을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힘껏 펼쳐야 한다.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염불을 통해서,
깊은 사유와 명상을 통해서 힘껏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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