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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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발 작성일12-03-13 07:20 조회4,088회 댓글0건본문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자기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거기에 울고 웃을 것이 진정으로 있는가.
울고 웃는 자신이 실체로서 있는지를 자세하고 자세히 관해 보라.
누가 울고 누가 웃는가?
그렇게 하는 근본은 누구인가를 지켜보라.
[자기]라는 욕심을 세우지 않고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지켜보라.
어째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는가...,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똑바로 지켜보라.
지켜볼 때에 망상이 든다해도 그것까지 지켜보라.
평등한 마음 텅 빈 마음으로 비춰보고 지켜봐라.
그러다 보면 습도 녹고 인과도 무너지며 나를 발견하게도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또는 소유하거나 누리기 위해서
밤 낮을 가리지 않으며 힘을 쏟고 정성을 기울인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따지고 보면 모두 즐거움을 얻자는 데 있다.
즐거움이 곧 삶의 목적이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그걸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때문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즐거움에 목말라하고 집착하며
즐거움을 의지, 욕구, 소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삶에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은 듯하다.
항상 즐겁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부처님께서는 세속적인 즐거움 대신에 출세간적인 즐거움을 역설하셨다.
세속적인 즐거움이란 무상(無常)한 것이며
조건지어진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결국 괴로움으로 통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사라짐은 곧 괴로움을 낳기 때문이라 하셨다.
고로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한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상한 것인 줄 알고,
다만 조건지어진 것임을 알아채린다면 거기에 더 큰 즐거움이 따른다고 하셨다.
[나는 즐겁다.] [나는 행복하다.] 하는 식으로
즐거움이나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면 괴롭다.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조건이 바뀌면 사라질 것이기에
어떤 즐거움이라도 그것은 곧 괴로움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기름이 떨어지면 등잔불이 꺼지듯이 즐거움이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갈증은 더욱 커진다.
즐거웠던 감정, 즐거웠던 기억들이 전보다 더 크고 강한 목마름을 낳고
그것이 커진만큼 채워지지 않는데서 오는 괴로움도 커진다.
하지만 즐거움․행복을 [내 것]으로 삼지 않는다면
무엇보다도 괴로움이 사라질 것이며
괴로움이 사라지면 저절로 평온한 즐거움이 따르게 될 것이다.
마음은 평화스러워 질 것이며 갈증도 해소될 것이다.
[나]가 빠지면 된다.
즐겁다는 생각, 즐겁다는 느낌이 내 것이다
혹은 내 속에서 나온다라고 그것을 나와 같이 보지를 말고
다만 지켜보면 된다.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채고 생각이나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채기만 하면된다.
마치 거울에 비춰보듯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내 것으로 만들지 말고,
내가 즐겁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만 어떤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지켜보기만 하라.
괴로운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싫다 좋다는 감정도 똑같이 지켜보라.
그러다보면 즐거움을 붙들고 괴로움을 피하려는 성향이
점차 스러져감을 알게 될 것이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결국은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집착할 대상이 못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는 붙잡지 않고 더는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누가 무상한 것을 겠는가.
절로 놓아지게 될 것이다.
마음엔 평화가 깃들고 평화스런 마음엔 즐거움이 함께 한다.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닌,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런 즐거움이 아닌
진짜 즐거움이 따른다.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자기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거기에 울고 웃을 것이 진정으로 있는가.
울고 웃는 자신이 실체로서 있는지를 자세하고 자세히 관해 보라.
누가 울고 누가 웃는가?
그렇게 하는 근본은 누구인가를 지켜보라.
[자기]라는 욕심을 세우지 않고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지켜보라.
어째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는가...,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똑바로 지켜보라.
지켜볼 때에 망상이 든다해도 그것까지 지켜보라.
평등한 마음 텅 빈 마음으로 비춰보고 지켜봐라.
그러다 보면 습도 녹고 인과도 무너지며 나를 발견하게도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또는 소유하거나 누리기 위해서
밤 낮을 가리지 않으며 힘을 쏟고 정성을 기울인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따지고 보면 모두 즐거움을 얻자는 데 있다.
즐거움이 곧 삶의 목적이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그걸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때문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즐거움에 목말라하고 집착하며
즐거움을 의지, 욕구, 소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삶에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은 듯하다.
항상 즐겁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부처님께서는 세속적인 즐거움 대신에 출세간적인 즐거움을 역설하셨다.
세속적인 즐거움이란 무상(無常)한 것이며
조건지어진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결국 괴로움으로 통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사라짐은 곧 괴로움을 낳기 때문이라 하셨다.
고로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한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상한 것인 줄 알고,
다만 조건지어진 것임을 알아채린다면 거기에 더 큰 즐거움이 따른다고 하셨다.
[나는 즐겁다.] [나는 행복하다.] 하는 식으로
즐거움이나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면 괴롭다.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조건이 바뀌면 사라질 것이기에
어떤 즐거움이라도 그것은 곧 괴로움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기름이 떨어지면 등잔불이 꺼지듯이 즐거움이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갈증은 더욱 커진다.
즐거웠던 감정, 즐거웠던 기억들이 전보다 더 크고 강한 목마름을 낳고
그것이 커진만큼 채워지지 않는데서 오는 괴로움도 커진다.
하지만 즐거움․행복을 [내 것]으로 삼지 않는다면
무엇보다도 괴로움이 사라질 것이며
괴로움이 사라지면 저절로 평온한 즐거움이 따르게 될 것이다.
마음은 평화스러워 질 것이며 갈증도 해소될 것이다.
[나]가 빠지면 된다.
즐겁다는 생각, 즐겁다는 느낌이 내 것이다
혹은 내 속에서 나온다라고 그것을 나와 같이 보지를 말고
다만 지켜보면 된다.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채고 생각이나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채기만 하면된다.
마치 거울에 비춰보듯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내 것으로 만들지 말고,
내가 즐겁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만 어떤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지켜보기만 하라.
괴로운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싫다 좋다는 감정도 똑같이 지켜보라.
그러다보면 즐거움을 붙들고 괴로움을 피하려는 성향이
점차 스러져감을 알게 될 것이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결국은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집착할 대상이 못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는 붙잡지 않고 더는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누가 무상한 것을 겠는가.
절로 놓아지게 될 것이다.
마음엔 평화가 깃들고 평화스런 마음엔 즐거움이 함께 한다.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닌,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런 즐거움이 아닌
진짜 즐거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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