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의 지혜 10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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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발 작성일12-03-13 07:10 조회4,225회 댓글0건본문
마음 챙김의 지혜 100가지
혹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라면 경전공부도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바라보기’와 ‘경전공부’는 큰 차이가 있다. ‘바라보기’는 오감, 생각, 감정으로 요동하는 ‘에고’를 비우고 ‘참 자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경전공부’는 ‘에고’를 써서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추리하고,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는 ‘에고’를 비우는 공부이고, 하나는 ‘에고’를 활용하는 공부이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병행해야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부의 핵심은 ‘참 자아’의 복원이니, 생각, 감정, 오감의 관조를 통해서 에고를 비우고, 나아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온전히 바라ㄱ보고 그와 합일되는 ‘바라보기’공부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나, 내 것’만을 찾는 ‘에고’를 비우지 못하는 한 번뇌, 망상은 끝이 없을 것이니, 경전공부만으로는 끝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한다고 자신이 눈이 없다고 여기면서, 다시 그 눈을 보고자 바라는 것과 같다. 이미 자신의 눈인데 어찌하여 다시 보려하는가? 만약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 안다면, 이미 그 눈을 본 것과 같을 것이다. 다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보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신령스러운 앎’도 이와 같도다.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고자 하는가? 만약 알기를 구한다면, 마침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모른다는 것만을 똑똑히 알면 되니, 이것이 바로 자시의 ‘본성’을 본 것이다.
2가지 업장의 정화가 있으니, 예컨대 ‘업장’이 있으면 그것은 무지와 아집의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무지는 지혜로 없애야 하고 아집은 자비로 없애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온갖 번뇌와 망상으로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이러한 ‘잡념’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을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일념’ 즉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정신을 한 가지 대상, 주제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정신을 평화로워지고 고요해질 것이며 점차 깨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일체의 생각이 끊어진 ‘무념’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본 모습, 사물의 본 모습을 홀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견성).
부처님의 호흡법-몸
1.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 는 “길게 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
2.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 짧게 내쉬면서 는 “짧게 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
-길고 짧은 호흡이 각각 육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함
3. 호흡을 하는 중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각 제반 감각을 두루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이를 두루 경험하면서 내쉰다.
-호흡과 육체의 상호관계를 관찰함
4. 몸의 여러 작용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들이쉬며, 몸의 여러 작용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두루 체험하면서, 호흡으로 육체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
대승불교에서는 이 단계에서 닦는 수련법을
1)수(數)-호흡을 숫자를 세면서 헤아림
2)수(隨)-숫자를 세자 않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따라다니며 느낌
3)지(止)-마음을 고요히 하고 선정에 들어감
4)관(觀)-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
5)환(還)-완벽한 참 자아의 경지를 회복하고자 자신을 정화함
6)정(淨)-모든 번뇌가 정화되어 참 자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
의 6가지로 정리하여 ‘6가지 신묘하게 진리로 들어가는 문’(육묘법문).
느낌
1.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제 2선정의 경지까지 체험해야 함
2.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제 3선정의 경지까지 체험해야 함
3. ‘마음의 작용(느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모두 체험하면서 마음이 겪게 되는 각종 ‘느낌’의 원인과 작용을 두루 이해함
4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통하여 ‘느낌’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함
마음
1.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통해 ‘마음’의 원인과 작용을 모두 이해함
2. 마음을 ‘기쁜 상태’로 만들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기쁜 상태’로 만들면서 내쉰다
-마음을 만족스러운 상태로 조절하는 법을 터득함
3.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쉰다.
-‘선정’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을 터득함
4. 마음을 ‘해탈의 상태’로 만들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해탈의 상태’로 만들 면서 내쉰다
-제 4선정에 들어 마음을 고요하고 안락하게 하는 법을 터득함
법
1.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쉰다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이 늘 변화하여 무상함을 관찰함
2. ‘탐욕에서 벗어남’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탐욕에서 벗어남’을 경험하면 서 내쉰다
-현상계에 대한 집착들이 점차 느슨해짐을 알아차림
3. ‘집착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 ‘집착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쉼 -현상계에 대한 집착이 소멸됨
4.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쉰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
불교의 4선정과 멸진정
1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미세한 생각이 존재함
-희열, 즐거움이 존재함
2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희열, 즐거움이 존재함
3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은은한 즐거움만 존재함
4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희열, 즐거움이 모두 존재하지 않음
멸진정
-4선정에는 ‘나’ 라는 존재감이 확연함
-멸진정은 ‘나’라는 존재감을 초월함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
이곳 티베트 승가의 체제는 경장에 의거한 철저한 교육이라서 어떤 법회이든 간에 교재가 꼭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불만을 가졌던 한 가지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고인이 이르되’아니면 전설 따라 삼천리 한 편 정도로써 시작하고 끝을 내는 법문이 많았던 것이다.
필자가 군 제대하고 복학하여 학교 다닐 때 들은 얘기다. 나에게 그 얘기를 해준 학생은 지금 전주교구 신부님이다.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나무를 좋아해서 집 주위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놓았고 집을 아예 나무 울타리로 빙 두러 만들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모든 나무들이 서서히 다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하긴 불가에는 ‘유정, 무정이 개유불성’이라 해서 생명 있고 없는 모든 것에 부처의 성품이 있다고 한다.
인도에선 무슨 일이든지 좀 차분하게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을, 인도에서 꽤 오랫동안 공부하고 떠난 분의 글에서 읽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구단을 가르쳤다.
“얘야, 자 어제 공부했던 구구단을 외워보자. 팔구는 얼마냐?” 한참을 생각한 아들이 “칠십”이라고 대답하니 “음, 잘했어. 이거 떡 하나 먹어라”하고 떡을 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왜 주냐고 하자 아버지 왈 “나도 알아야. 우리 아들이 어제는 팔십이라고 했거든요, 아마 내일쯤이면 맞출 수 있을 거예요.”
인도인의 여유 있는 심성을 멋지게 비유했지 않았는가?
경허의 무심
비록 몸뚱이는 살아 있으나 내 마음을 찾으려면 이미 죽은 송장의 몸으로 여겨야 하며 세상일이 좋으나 싫으나 다 한갓 꿈으로 알라. 사람의 생사는 누구도 알지 못하니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에 죽고 저녁에 만난 사람이 아침에 죽는 것이 또한 세상의 이치다.
또한 죽어 천당과 지옥에 가서 짐승도 되고 귀신도 되어, 구천을 한없이 떠도는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 이는 바로 사람이 가진 업보가 아닌가. 그러기에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궁구하여 보라. 그리고 듣고 말하는 일체의 형상을 생각하라.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려고 하는 것은 똥 덩어리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 가지고 흰 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성불하여 마음을 닦는 데는 그것조차 쓸데없는 짓이니 부디 세상일을 잘하려고 하지 말라.
일체 세상일이 다 허망하다 하시고 중생의 모든 하는 일이 다 나고 죽는 법이라 오직 제 마음을 깨달아야 진실한 법이 된다.
오늘은 비록 몸을 보존하나 내일은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사람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왜 내가 살고 있는가를 명심해야 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단 한 시간이라도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 실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다. 그저 하염없이 지내야 한다.
모든 일이 모두 마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태어나고 포악하면 범과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와 곤충이 되며 가볍고 분주하면 나비가 되나니 그러므로 옛 사람이 이르되 “다만 한 생각의 차이가 그대로 만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동산 화상이 이른바
“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
석가께서 말씀하시길
“죽음이란 느티나무의 많은 잎들 중에 한 잎이 지는 것과 같다”
혹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라면 경전공부도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바라보기’와 ‘경전공부’는 큰 차이가 있다. ‘바라보기’는 오감, 생각, 감정으로 요동하는 ‘에고’를 비우고 ‘참 자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경전공부’는 ‘에고’를 써서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추리하고,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는 ‘에고’를 비우는 공부이고, 하나는 ‘에고’를 활용하는 공부이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병행해야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부의 핵심은 ‘참 자아’의 복원이니, 생각, 감정, 오감의 관조를 통해서 에고를 비우고, 나아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온전히 바라ㄱ보고 그와 합일되는 ‘바라보기’공부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나, 내 것’만을 찾는 ‘에고’를 비우지 못하는 한 번뇌, 망상은 끝이 없을 것이니, 경전공부만으로는 끝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한다고 자신이 눈이 없다고 여기면서, 다시 그 눈을 보고자 바라는 것과 같다. 이미 자신의 눈인데 어찌하여 다시 보려하는가? 만약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 안다면, 이미 그 눈을 본 것과 같을 것이다. 다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보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신령스러운 앎’도 이와 같도다.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고자 하는가? 만약 알기를 구한다면, 마침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모른다는 것만을 똑똑히 알면 되니, 이것이 바로 자시의 ‘본성’을 본 것이다.
2가지 업장의 정화가 있으니, 예컨대 ‘업장’이 있으면 그것은 무지와 아집의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무지는 지혜로 없애야 하고 아집은 자비로 없애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온갖 번뇌와 망상으로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이러한 ‘잡념’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을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일념’ 즉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정신을 한 가지 대상, 주제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정신을 평화로워지고 고요해질 것이며 점차 깨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일체의 생각이 끊어진 ‘무념’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본 모습, 사물의 본 모습을 홀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견성).
부처님의 호흡법-몸
1.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 는 “길게 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
2.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 짧게 내쉬면서 는 “짧게 내쉰다”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
-길고 짧은 호흡이 각각 육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함
3. 호흡을 하는 중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각 제반 감각을 두루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이를 두루 경험하면서 내쉰다.
-호흡과 육체의 상호관계를 관찰함
4. 몸의 여러 작용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들이쉬며, 몸의 여러 작용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두루 체험하면서, 호흡으로 육체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
대승불교에서는 이 단계에서 닦는 수련법을
1)수(數)-호흡을 숫자를 세면서 헤아림
2)수(隨)-숫자를 세자 않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따라다니며 느낌
3)지(止)-마음을 고요히 하고 선정에 들어감
4)관(觀)-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
5)환(還)-완벽한 참 자아의 경지를 회복하고자 자신을 정화함
6)정(淨)-모든 번뇌가 정화되어 참 자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
의 6가지로 정리하여 ‘6가지 신묘하게 진리로 들어가는 문’(육묘법문).
느낌
1.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제 2선정의 경지까지 체험해야 함
2.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제 3선정의 경지까지 체험해야 함
3. ‘마음의 작용(느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모두 체험하면서 마음이 겪게 되는 각종 ‘느낌’의 원인과 작용을 두루 이해함
4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통하여 ‘느낌’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함
마음
1.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쉰다.
-4단계의 선정을 통해 ‘마음’의 원인과 작용을 모두 이해함
2. 마음을 ‘기쁜 상태’로 만들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기쁜 상태’로 만들면서 내쉰다
-마음을 만족스러운 상태로 조절하는 법을 터득함
3.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쉰다.
-‘선정’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을 터득함
4. 마음을 ‘해탈의 상태’로 만들면서 들이쉬며, 마음을 ‘해탈의 상태’로 만들 면서 내쉰다
-제 4선정에 들어 마음을 고요하고 안락하게 하는 법을 터득함
법
1.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쉰다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이 늘 변화하여 무상함을 관찰함
2. ‘탐욕에서 벗어남’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며, ‘탐욕에서 벗어남’을 경험하면 서 내쉰다
-현상계에 대한 집착들이 점차 느슨해짐을 알아차림
3. ‘집착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 ‘집착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쉼 -현상계에 대한 집착이 소멸됨
4.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며,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쉰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
불교의 4선정과 멸진정
1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미세한 생각이 존재함
-희열, 즐거움이 존재함
2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희열, 즐거움이 존재함
3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은은한 즐거움만 존재함
4선정
-정신이 하나로 집중됨
-생각이 존재하지 않음
-희열, 즐거움이 모두 존재하지 않음
멸진정
-4선정에는 ‘나’ 라는 존재감이 확연함
-멸진정은 ‘나’라는 존재감을 초월함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
이곳 티베트 승가의 체제는 경장에 의거한 철저한 교육이라서 어떤 법회이든 간에 교재가 꼭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불만을 가졌던 한 가지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고인이 이르되’아니면 전설 따라 삼천리 한 편 정도로써 시작하고 끝을 내는 법문이 많았던 것이다.
필자가 군 제대하고 복학하여 학교 다닐 때 들은 얘기다. 나에게 그 얘기를 해준 학생은 지금 전주교구 신부님이다.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나무를 좋아해서 집 주위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놓았고 집을 아예 나무 울타리로 빙 두러 만들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모든 나무들이 서서히 다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하긴 불가에는 ‘유정, 무정이 개유불성’이라 해서 생명 있고 없는 모든 것에 부처의 성품이 있다고 한다.
인도에선 무슨 일이든지 좀 차분하게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을, 인도에서 꽤 오랫동안 공부하고 떠난 분의 글에서 읽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구단을 가르쳤다.
“얘야, 자 어제 공부했던 구구단을 외워보자. 팔구는 얼마냐?” 한참을 생각한 아들이 “칠십”이라고 대답하니 “음, 잘했어. 이거 떡 하나 먹어라”하고 떡을 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왜 주냐고 하자 아버지 왈 “나도 알아야. 우리 아들이 어제는 팔십이라고 했거든요, 아마 내일쯤이면 맞출 수 있을 거예요.”
인도인의 여유 있는 심성을 멋지게 비유했지 않았는가?
경허의 무심
비록 몸뚱이는 살아 있으나 내 마음을 찾으려면 이미 죽은 송장의 몸으로 여겨야 하며 세상일이 좋으나 싫으나 다 한갓 꿈으로 알라. 사람의 생사는 누구도 알지 못하니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에 죽고 저녁에 만난 사람이 아침에 죽는 것이 또한 세상의 이치다.
또한 죽어 천당과 지옥에 가서 짐승도 되고 귀신도 되어, 구천을 한없이 떠도는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 이는 바로 사람이 가진 업보가 아닌가. 그러기에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궁구하여 보라. 그리고 듣고 말하는 일체의 형상을 생각하라.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려고 하는 것은 똥 덩어리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 가지고 흰 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성불하여 마음을 닦는 데는 그것조차 쓸데없는 짓이니 부디 세상일을 잘하려고 하지 말라.
일체 세상일이 다 허망하다 하시고 중생의 모든 하는 일이 다 나고 죽는 법이라 오직 제 마음을 깨달아야 진실한 법이 된다.
오늘은 비록 몸을 보존하나 내일은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사람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왜 내가 살고 있는가를 명심해야 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단 한 시간이라도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 실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다. 그저 하염없이 지내야 한다.
모든 일이 모두 마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태어나고 포악하면 범과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와 곤충이 되며 가볍고 분주하면 나비가 되나니 그러므로 옛 사람이 이르되 “다만 한 생각의 차이가 그대로 만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동산 화상이 이른바
“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
석가께서 말씀하시길
“죽음이란 느티나무의 많은 잎들 중에 한 잎이 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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