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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 두타산 삼화사 극락전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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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26 19:50 조회1,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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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극락전 감로탱화(甘露幀畵)

 

조선시대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의식에 사용된 불화. 감로탱·감로도·감로왕도. 

 

의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아귀(餓鬼)’에게 감로(甘露)를 베푼다는 뜻에서 ‘감로도’라고 한다. 좁은 의미로 아귀는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는 육도(六道)의 한 생이기도 하고, 역시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있는 돌아가신 조상을 뜻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로 아귀는 해원(解寃)해야 할, 억울하게 죽은 고혼(孤魂)의 총칭이며, 육도 중생의 고통을 집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수륙재와 같은 천도재(薦度齋)에서 아귀는 구제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감로’는 원래 천신(天神)의 음료인데, 의식 중에 부처의 은덕으로 변화된다. 즉 감로는 아귀의 목구멍을 개통시켜 배고픔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이 부과된다.
유교를 중시한 조선시대에는 불교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특히 16∼17세기의 불교는 수륙재(水陸齋), 우란분재(盂蘭盆齋) 등 영혼천도의 사회적 기능이 두드러진 의식과 신앙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 감로도는 그러한 천도의식 때 주로 사용되었던 그림으로, 16세기에 도상이 성립되었다. 주로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 아귀를 화면 중앙에 커다랗게 그려놓고, 아귀를 중심으로 위쪽으로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재단(齋壇)과 여래, 그 아래쪽으로는 수많은 고혼의 생전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16세기 후반에서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400여 년에 걸쳐 꾸준히 제작된 감로도는 현재 대략 70점 내외의 작품이 국내외에 남아 있다.

 

감로도는 수륙재와 같은 영혼천도의식을 가시화하였다. 이러한 흔적은약센지(藥仙寺) 소장 「감로도」와『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와의 연관성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15세기 후반경 수륙의궤집이 왕성하게 유통되면서 그보다 좀 늦은 시기에 감로도의 도상이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확인된다.
수륙재와의 연관성은 감로도의 제명 문제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감로왕도’에서 ‘감로도’로 이행되는 변천 과정은 수륙재 관련 의식집의 시기별 간행 현황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로도의 핵심 주제는 감로왕에서 화면 중앙을 가득 메운 성찬, 즉 ‘감로’로 그 강조점이 이동하면서 재단의 규모와 내용이 확대되어 갔으며, 이것은 고혼을 구제할 ‘감로음식을 그린 그림’으로써의 ‘감로도’라는 제명을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보다 조선적인 감로도의 도상화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수륙재와 일정 부분 관련 있는 의궤집인『운수단(運水壇)』의 존재는 감로도에서 발견되는 중심 도상의 변화 추이에 있어 주목된다. 예컨대, 18세기 이후부터는 칠여래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상단의 중심 도상으로 정착되어가는 경향이나 의식의 공간을 산하에서 장막이나 병풍으로 구획한 좁은 공간에서 설행(設行)되는 모습 등도 이 시기에 나타나는 축소된 의식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것을 반영한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도상의 변천 과정에는 「봉서암감로도」(1759년)에서 발견되는 각종 의식집의 그림은 그것을 주요한 기반으로 당시의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감로도의 구도는 상·중·하단(下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삼단의 구도는 각 단계마다 설정된 주제가 있어서 하단에서 상단으로 상승하는 구도인 것이다. 상승 과정 속에는 과거에서 현재(中段), 그리고 미래(上段)로 이어지는 며칠간의 삼세 여행이 도설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이 7일 동안 주야로 거행되는 수륙재에서 나타나는 단계별 이적(異蹟)과 더불어 의식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아귀의 해갈 장면이 화면 중앙부 하단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의 이 장면은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확인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돕는 것이 아마도 감로도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감로도의 여러 장면 중에서도 특히 아귀 구제장면은 대중들에게 의식의 효험을 시각적으로 제시해주는 가장 강력한 영혼천도의식의 시각적 메시지인 것이다.
감로도의 기본적 도상 구성은 이처럼 상중하의 체계를 기본으로 하며 시기별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현재로서 가장 이른 예에 속하는 일본 약센지(藥仙寺) 소장「감로도(甘露圖)」(1589년)를 기점으로 감로도의 성립을 16세기 후반 즈음으로 본다면, 17세기 말까지는 감로도의 도상이 정립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전반기까지 감로도가 다양한 도상과 구성의 변화를 보이면서 정형화를 이룬 시기라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는 18세기에 비해 형식화가 이루어진다.


감로도는 수륙재의 본의를 더욱 강력히 전달하는 ‘감로’를 중심으로 한 도상의 창출뿐만 아니라 하단 부분의 인물상을 통해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가령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감로탱화에서 상단은 거의 변화 없이 도식화된 도상의 전개를 보이는 반면, 하단의 경우에는 18세기나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때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변 사찰에서 조성된 19세기 후반 감로도에서는 고혼의 숙세인 암울한 순간들을 기본 하단의 도상으로 설정했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인간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곧 하단 화면에 펼쳐질 긍정적인 인간생활을 확대 반영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하게 분화된 직업, 특히 도시경제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는 여러 장면들이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하단에 줄곧 흐르던 침울하고 불행한 죽음의 분위기를 벗어버리고 왁자지껄한 시장과 유흥 등 발랄한 생활 중심의 도상으로 바뀌고 있다. 

감로도는 하단, 즉 과거에서 중단인 현재를 거쳐, 미래의 상단 극락의 세계로 상승하는 듯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삼단의 상승 과정 속에는 과거(下段)에서 현재(中段), 그리고 미래(上段)로 이어지는 삼세 여행이 감로도의 도설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감로’를 통한 고혼의 구제였으며, 이는 수륙재의 본의에서 출발하여 가장 조선화된 도상의 창출로 이어지는 여정의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감로탱화(甘露幀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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